부수골 고추연가
영양 깊숙한 곳 서석지로 더 유명한 애기선바위길 옆의 묵이네
2천여 평 모릉이 밭엔 올해도 어김없이 이곳 토종고추인
영양수비초가 자란다.
설을 지내고 며칠 후인 정월 초이레 쯤 비닐하우스에서 태어나
4월 초순경에 검은 비닐 멀칭 된 이 밭으로 시집와 터를 잡았으니
벌써 다섯 달이 성큼 지나고 있다.
작년엔 여느 해보다 너무한 무더위에 또 초기상달에 가뭄이 극심하고
작황이 시원찮아서 고추 값이 금값 이 댔었다.
그래서 작년에 고추농사를 좀한 사람들은 몇 년 만에 돈 좀 만졌다고
얼굴에 웃음을 흘리고 다녔다.
그동안 고추 아닌 다른 작물로 선회했던 허리 등이 굽은 촌로들이
이에 맴이 휭 해 올핸 너도나도 고추를 심었다.
작년 같은 호 상황을 학수고대하면서
성장기를 지나 결실기에 접어든 뙤약볕의 8월이 되었다.
8월이 여름의 한복판이라지만 고추농사에 있어 8월은 수확의 계절이다.
8월 상순에서부터 시작하여 추석을 쇠고 두벌을 돌려 따면 고추수확은 거의 다 끝나는 것이다. 다른 작물의 결실기인 서리가 오는 가을에의 고추는 밑 둥이 잘려져 설움만을 겪을 뿐이다.
언제나처럼 심심산골 영양고을의 묵이네 8월 고추 골에
올해도 어김없이 색동옷을 쓴 달팽이가 골을 긴다.
어제 낮 부용봉에 올랐던 휴가 온 서울 강남댁이 하는 말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묵이님네 모릉이 밭에 색점박이 벌레가 기어다니던데, 무엇이예요?”
파란물결에 고랑마다 색색의 점들이 있는 색다른 풍경을 보았으리라.
한 낮 강한 햇볕과 자외선을 막아줄 앉은뱅이 의자에 걸린
파라솔의 풍경이다.
동창이 밝히는 이슬 새벽부터 어스름이 스며드는 저녁나절까지
동해바다보다 더 넓게 펼쳐진 초록이 떡 진
긴이랑 속에서 허리 필 새 없이 엉금거리며 긴다.
불과 10여해 전에는 동네 품앗이로 첫 골은 김천 댁, 두 번째 골에는
포항 댁, 세 번째 골은 학골 댁, 그리고 옆집의 만수엄마가 품앗이로
와서 땄었는데, 그새 모두들 한결 세월을 먹어 등이 솟고 허리가 굽어서 요즘은 밭고랑에서 완전 퇴출당했다.
대신에 밭고랑을 타고 앉은 이들의 면면이 국제화 돼 버렸다.
첫 골은 베트남 댁, 두 번째 골은 캄보디아 댁, 세 번째 골은 필리핀 댁, 네 번째 골은 연변 댁으로 분 냄새 풍기는 젊은 다국적이 되었다.
예전의 댁들은 고된 시집살이에서 묻어난 시부모 예기며 애들 키우던
예기며 젊었을 적의 연애 예기가 긴 이랑에서 고랑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 나왔었다. 그러나 국제화된 요즘의 밭고랑에서는 서로가 말 못하는 장승이 되어 그저 소리 없이 이랑의 붉은 고추만
소 젖 짜듯이 잡아당길 뿐이다.
말이 통해 정을 나누면 힘들음도 조금은 사라질 텐데.
서로가 말이 없다.
낯선 이방인들의 더운 손길 덕에 혹여 올해도 금초가 될 랑 가.
때 지나 새참이 되면 예전엔 밭가 느티나무 밑에 멍석 깔고 둘러앉아
농탁도 한잔 주 욱 들이키며 숨을 골랐었는데, 지금은 식성도
각자 색깔들이라 만인 공통의 커피타임으로 새참이 때워졌다.
세월 따라 점심도 배달민족으로 바뀌었고, 무쇠 솥에서 끓여낸 구수한 된장냄새도 사라진지 오래다.
금년 따라 최저임금의 상승여파로 도시엔 실업자가 많다는데
물 맑고 공기 좋은 산골까지 찾아와 땡볕안고 고추고랑에 들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는다.
천년을 땅을 안고 살아온 얼굴 까무잡잡한 농 후손만이
천직인양 버리지 못하고 두꺼비 등처럼 굳은 손등으로 안고 갈뿐이다.
색동 달팽이가 묵묵히 지나간 긴 이랑이 끝나면 뽕잎을 먹은 누에가
똥을 싸듯 고추포대가 열 걸음 거리에 또박 또박 앉아있다.
종일토록 끈덕지게 노동한 수확물이다.
더위에 지친 희 그리한 P. P 마대 포 안에서
선지피보다도 붉은 고추가 종일 가쁜 숨을 헐 덕 인다.
해 거름에 접어들기 시작하자 무릎관절 휘청거리며
묵이네 가 고추포대를 왼 어깨에 메고 고랑에서 끄집어 내온다.
검게 그을 은 묵이네 의 얼굴에서 유리알이 쏟아진다.
토시를 찬 팔뚝과 등줄기에서도 골짜기 옹달샘물이 흐른다.
잠뱅이 속 런닝구의 등짝에서는 늙은 아버지의 시어빠진 냄새가
배꼽 위 가슴골에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냄새가 새어 나온다.
오십 줄 중반을 바라보는 삼십년 농부인 묵이네 도 이제 기력이 달린다.
예전의 패기 찬 혈기는 산등성이 너머로 사라진지 오래다.
묵이네 도 자식들 모두는 대처로 떠나고 묵이네 부부만 오롯이 남았다.
그가 배운 것은 오직 농사뿐 이였고 그저 조상들이 아끼고 사랑했던
농토이기에 말없이 묵묵히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이농이 이슈가 안 되고 잠자던 그 시절
식솔들과 먹고 살기위한 자작농 이었을 때는
웃음과 보람도 참으로 벅찼었는데...
그 때에는 고추 주산단지인 영양고을 이곳도
수수깡으로 발을 만들어 햇볕좋은 날에
들락날락하며 아이들 손때도 묻혀서 태양초로 만들었는데,
열손이 부족한 지금은 최첨단 건조기의 근면한 협조아래 밤을 지세 우며
아래위로 뒤집어서 이틀 밤낮 만에 화근초로 만들 수밖에 없다.
탱글탱글한 홍초가 건조기의 마사지로 팡팡함은 넘겨주고
원숙한 건초로 탄생되는 모습에 나의 노년이 깜박인다.
엊그제 마을이장의 스피커 음성이 귀를 맴돈다.
‘안녕하세요? 부수 골 이장 입니더.
요번고추수매는 물량이 넘치는 관계로 가격이 작년의 반 정도로 형성되었으니 그리 아시고 대처를 하시기 바랍니더.’
올핸 너 남 할 것 없이 모두가 고추만 심어 댔으니 누굴 원망하랴.
옆 가슴 허파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못에 찔린
리어카바퀴바람처럼 크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끼리의 리그에서
그저 수매해주는 농협에 순응해야지
그런데 왜?
쓸쓸한 슬픔이 드는 걸까?
( 별첨)
□ 작품명 : 부수골 고추연가
요약 : 10 여 년 전 고추주산단지인 영양으로 귀촌하여 늘 상 봐오던 옆집의 고추농사풍경을 그려 농민들의 애환을 표현하고자 하였음.
□ 응모자 : 경 찬 호(1955년생)
010-4928-0037
□ 약력 : 서울특별시농수산식품공사 퇴직 후 경북영양으로 2008년 귀촌하여 현재까지 약초연구하고 있음.